쇼츠와 릴스,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왜 리얼인가
10분 안에 이런 내용을 알려드려요!
• 2024 콘텐츠 시장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리얼리티
• 〈나는 솔로〉, 〈피지컬 100〉은 왜 성공했을까? 기획 의도와 숨은 전략
•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시대, 콘텐츠 차별화를 위해 가져야 할 2가지
리얼리티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리얼리티'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현실에 기반한 콘텐츠를 말하며 리얼리티 예능, 다큐멘터리, 뉴스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오디션이나 야외 서바이벌 등은 리얼리티임에도 최소한의 기획 대본이 필요하므로 한국시장에서는 예능이라는 단어를 더해 통상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부른다.
본격적으로 대국민 투표 시스템을 도입했던 과거의 〈슈퍼스타K〉에서 최근 Mnet의 〈걸스플래닛999〉, 〈보이즈 플래닛〉 같은 음악 서바이벌, 코로나19 이후로 활발히 생산되는 MBC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tvN의 〈서진이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같은 여행 리얼리티 등이 대표적이다.
각본이 있는 예능에서 벗어나 2010년대 이후로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한 참여관찰 예능들이 모두 리얼리티의 범주에 속한다. 소위 한국에서 '예능'이라고 부르는, 드라마가 아닌 TV쇼 시리즈 대부분이 리얼리티 콘텐츠인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크립트(Scripted)와 논스크립트(Non-Scripted) 콘텐츠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크립트는 말 그대로 대본이므로 결국 대본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말한다. 스크립트 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토크쇼 등이며, 논스크립트 콘텐츠는 뉴스, 다큐멘터리 그리고 최소한의 구성이 있는 리얼리티 TV쇼 등이다.
편의상 스크립트 콘텐츠는 픽션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최소한의 구성'을 언급한 이유는 출연자에게 미션이 주어지는 서바이벌, 다큐 멘터리에 삽입되는 배우들의 재현 장면, 아프리카에서 수 년간 촬영하는 영국 국영방송 BBC의 환경 다큐멘터리에서도 최소한의 장치와 구성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성이 최소한이라면 논스크립트고 이는 대부분 논픽션 콘텐츠로 분류된다. 리얼리티 콘텐츠가 늘어나는 트렌드는 최근 기업들의 마케팅이 광고라는 직접적인 방식에서 제품의 역사나 생산 과정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주는 것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본다. 갤럭시를 향한 글로벌 관심도가 커지면서 삼성전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첫 번째로,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 갤럭시 신제품을 소개하는 행사 '언팩Unpack'을 열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년간 오프라인 행사와 라이브 스트리밍을 동시에 진행하는 형식으로 행사를 개최했고, 그중 라이브 스트리밍은 평균 5천만 뷰 이상에 달하는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라는 변수가 등장한다. 안정적으로 유지중이던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게 되자, 삼성전자는 언팩을 대신해 '언톨드 스토리Untold stories'라는 디지털 콘텐츠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다. 언톨드 스토리는 말 그대로 대중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콘텐츠다. 유튜브에서 이 시리즈를 단 10초라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콘텐츠는 극단적일 만큼 사실적이다.
영상은 삼성전자가 왜 스마트폰을 반으로 접게 되었는지, 갤럭시Z 폴드4의 경우에는 항공기에 쓰이는 강화섬유 플라스틱을 사용해 얼마만큼의 중량을 줄이게 되었는지 등 날카로운 지식과 정보를 다큐멘터리처럼 들려준다. 물론 삼성전자의 개발자, 디자이너, 혁신가들의 말을 통해서다.
얼핏 IT 덕후들의 눈길만 끌 것 같은 콘텐츠가 유튜브에 공개되면 며칠만에 몇백만 뷰를 기록하고 수만 개의 '좋아요'가 눌린다. 더 흥미로운 건 테크 유튜버들의 움직임이다. 새로운 언톨드 스토리가 나오면, 발 빠르게 원하는 부분을 편집하고 가공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어마어마하게 재생산시키곤 한다.
지금의 고객(사용자)들은 디지털 콘텐츠를 대하는 수준이 매우 높다. "갤럭시Z 플립5에 이런저런 기능들이 있구나"를 넘어서 "그런데 이건 어떻게 만들지? 개발자가 왜 이런 생각을 한 거지?" 같은 리얼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은행의 역사를 조곤조곤 설명한 핀테크 기업 토스의 웹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광고의 모범으로 평가되는 구독자 170만 명의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도 마찬가지다. 〈조승연의 탐구생활〉 제작팀이 광고에 담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테니스복에서 출발한 의류 브랜드 라코스테에서 지원받은 콘텐츠는 1920년대 레저의 개념과 피케 셔츠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지원으로 제작한 콘텐츠에서는 왜 뉴욕항에서 10분 거리에 월스트리트의 무역 건물들이 자리 잡았으며 이 지역이 어떻게 세계적인 도시가 됐는지 설명한다.
광고도 변해가는 것이다. 브랜드의 철학을 일방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거창하게 담아내던 과거를 넘어서, 이제는 진짜 이야기와 생산적인 정보가 소구된다. 현실에 닿아 있는 스토리텔링이 대중을 움직이는 시대다.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2년은 역대 가장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만들어진 해다. 미국의 OTT, 지상파와 케이블TV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역대 최대인 2024편을 기록했고 이는 전년 대비 137편이 증가한 수치다.
참고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시장 체력이 약화된 상황이기에 2023년 결산은 일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이 과잉 공급되며 콘텐츠가 넘쳐났는데, 2022년에 피크를 찍은 것이다. 한마디로 2022년은 피크TV의 해였다.
더 흥미로운 건 최근 20년간의 콘텐츠 구성 비율이다. 논 스크립트 성격의 콘텐츠가 지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 비율이 2022년 기준으로 58%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는 산업적인 배경과 시청자 소비 행태의 변화가 있다.
결국 대본 없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비싼 영화와 드라마 비율이 줄어든다는 뜻이며,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의 예능과 시사교양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의 과잉 공급으로 인한 유료방송, OTT 사업 전반의 악화된 수익 구조, 그리고 전 세계적인 불경기에 따른 비용 감축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미래의창
이쯤에서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K-콘텐츠 트렌드를 분석하는데, 왜 북미시장의 사례를 빈번하게 활용하는지 말이다. 전통 TV와 유료방송을 지나 OTT를 비롯한 IT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들은 모두 북미시장에서 비롯됐다.
시청자가 유료방송 가입을 해지하고 OTT로 갈아타는 코드커팅Cord-cutting*,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현상,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유통하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기획사인 MCN(Multi Channel Network)의 몰락과 같은 그간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중요한 변곡점들도 늘 북미시장이 시작이었다. 이는 한국의 미디어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을 이해하는 데 미디어 종주국인 미국 트렌드가 필요하다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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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의 선을 끊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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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관점에서 보자. 무수한 플랫폼들이 시간이 부족한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전략적으로 더 짧은 콘텐츠를 쏟아낼 정도로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심지어 1020 세대에게 콘텐츠에 관해 물으면, 유튜브의 쇼츠와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틱톡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현재 쇼츠에서 가장 활발한 소비가 일어나는 콘텐츠 포맷도 '10초 일상'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의미 없이 웃기거나 혹은 픽션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디지털 커뮤니티나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쇼츠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가버리는데 보고 나면 허탈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곤 한다. 창작자는 몇 초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스킵(건너뛰기)돼 버리니 콘텐츠 초반에 힘을 주게 되고, 소비자는 제작 의도에 따라 짧은 콘텐츠들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보는 중독의 굴레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쇼츠와 릴스가 넘쳐나고 건너뛰기와 배속(×1.5, ×2)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시청자가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리얼리티'다.
필자는 독서 커뮤니티 트레바리에서 만난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이런 트렌드를 더욱 실감했다. 선생님은 지난 20여 년간 초등학생을 가르치면서 지금처럼 다큐멘터리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애들이 없다고 했다.
내가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자, 선생님은 짧은 시간에 이목을 끄는 숏폼의 피로함과 요즘 아이들의 업에이저Upager* 성향이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로까지 사고가 확장해가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요즘 초등학생들은 교과서 안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을 배울 때, 서사 위주의 문학 속 캐릭터보다는 다큐멘터리 성격의 실존 인물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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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서비스에 둘러싸인 요즘 아이들이 기존 세대에 비해 왕성한 정보를 얻게 되니 다방면으로 아는 것이 많다는 뜻의 신조어.
2023년 내내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며 온갖 뉴스와 예능에서 소개된 영상도 에버랜드의 마스코트인 푸바오와 이들을 보살피는 강철원, 송영광 사육사의 이야기였다. 이들이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에버랜드〉는 기존에 인기 있던 먹방이나 꽁트 형식의 스케치 코미디가 아닌 관찰 형식으로 푸바오와 사육사들의 일상과 관계를 조명했는데, 이 자체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다. 진짜 이야기의 힘이다.
2023년 10월을 기준으로 〈에버랜드〉의 구독자 수는 110만 명 남짓이지만 인기 영상은 수천 만 조회수를 웃돌며, 이를 활용한 굿즈와 디지털 캐릭터 사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2023년 하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화제작은 바로 〈나는솔로〉(이하 〈나솔〉)라는 연애 리얼리티였다.
단순히 예능 판을 뒤흔든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된 것이다. "요즘 〈나솔〉 16기 보니?"는 밈이 되었으며 수요일 밤 10시면 〈나솔〉 보러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시청자들이 생겼을 정도이다. 극단적인 비유이지만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가 시작하면 길거리에 차가 안 다닌다는 그 옛날의 풍문도 떠오른다.
결국 〈나솔〉 16기의 마지막 회차 시청률은 7.9%까지 올랐으며, 종영 삼 주를 훌쩍 넘기고도 〈나솔〉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제 아무리 〈나솔〉의 팬덤이더라도 2, 3차로 파생되고 있는 〈나솔〉 연관 콘텐츠들의 생산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일까. 이미 다양한 전문가들과 유튜버들은 〈나솔〉의 성공 요인으로 짜여진 각본이 없는 리얼리티라는 점과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줬다는 점을 말한다. 물론 이 같은 화제성에는 데이트 비용을 제작비로 처리하면 날것의 대화와 찐 표정들이 안 나와서 출연자들에게 밥값을 내게 한다는 PD의 면밀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나솔〉에는 일반인 출연자가 주는 진정성의 힘이 있다. 대부분의 예능이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연예인을 담는 관찰 카메라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연출인지 명확하지 않다. 100% 리얼리티라고 시청자를 학습시키지만 '어딘가에는 연출된 지점이 있겠지'라는 찜찜함을 떨쳐내기 어렵다.
결국 2023년 최고의 화제작은 〈카지노〉도 〈밀수〉도 〈피지컬: 100〉도 〈무빙〉도 아닌 케이블 채널의 〈나솔〉이 당첨됐다. 시청자는 리얼리티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던 아슬한 지점들에 환호했으며 사랑만큼 미움도 받은 출연자들이지만 그들의 진정성만큼은 신뢰했다. 진짜이기 때문이다.
〈피지컬: 100〉과 〈나는 신이다〉의 성공, 지상파의 역사적 아카이브
2023년 상반기, K-예능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리얼리티였다. 최강의 신체 능력을 갖춘 100인을 데리고 최고의 '몸'을 선발한 〈피지컬: 100〉은 2023년 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K-예능 최초로 글로벌 1위에 올라섰다.
그간 K-예능의 최고 순위는 2022년 〈솔로지옥〉이라는 데이팅쇼가 기록한 글로벌 5위였다. 물론 〈피지컬: 100〉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면 예능으로 분류되는 그간의 방식으로 편의상 '예능'이라 일컬을 뿐, 사실상은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취한 리얼리티 시리즈라고 부름이 옳다.
이와 관련해, K-예능 최초의 글로벌 TV쇼 1위 연출자가 MBC 출신의 시사교양 PD라는 점도 흥미롭다. 글로벌 TV쇼 1위라는 성과는 공개된지 고작 이 주 만에 달성했으며 BBC에서는 "다음의 한국 문화 트렌드는 K-리얼리티쇼?"라는 헤드라인으로 〈피지컬: 100〉을 크게 주목하기도 했다.
미래의창
연이어 3월에는 넷플릭스에서 국내 1위를 달리던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이 비영어권 글로벌 5위까지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신이다〉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명명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든 4명의 종교인과 그 피해자들을 관찰한 8부작 다큐멘터리다. 피해자만이 아니라 해당 종교단체 관계자들과 당시 취재했던 기자, PD들까지 등장해 과거의 보도보다 현실감 있게 연출하며 대중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2023년 상반기 연이어 공개돼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K-리얼리티쇼 〈피지컬: 100〉과 〈나는 신이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은 리얼리티 콘텐츠의 본질에 부합한 사회적 담론을 끄집어냈다. 〈피지컬: 100〉은 소외당하거나 비인기인 스포츠 종목들과 몸을 쓰는 직업군을 재조명했으며 〈나는 신이다〉는 종교단체에서 일어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보여줬다. 〈나는 신이다〉의 연출자인 조성현 PD는 왜 한국은 교주들에게 안전한 나라인 건지, 우리 스스로 방관자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닌지 물음표를 던지려고 했다고 한다.
둘째, 두 시리즈 모두 지상파 TV 방송국인 MBC가 제작사이다. 우선 K-예능 최초로 글로벌 1위를 한 서바이벌쇼 〈피지컬: 100〉의 연출자 장호기 PD가 MBC 시사교양국 소속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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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2023년 6월 〈피지컬: 100〉의 공동제작사인 '갤럭시 코퍼레이션'으로 이적해 〈피지컬: 100〉 시즌2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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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장호기 PD는 지상파 시사교양국의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해 인간의 신체를 탐구하는 콘텐츠를 어떤 형태로든 다뤄볼 계획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특공대 출신이라 신체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였지만 보디 프로필 촬영이라는 최근의 사회적 현상에서 대중의 수요를 읽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획이 넷플릭스를 만나면서 상금 3억 원을 걸고 최고의 몸을 찾는 글로벌 서바이벌로 거대해진 것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현장의 치열함이 그대로 전달되기 위해 예능형 자막을 최소화하고 의도적인 편집을 없앴다는 점도 유효했다.
공개 이 주 차에 홍콩, 싱가포르를 비롯해 동남아 전역에서 1위를 달성한 〈나는 신이다〉는 더 흥미롭다. 사회적 파급력이 강하고 확실한 증언 기록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과거의 자료화면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십수 년간의 MBC 아카이빙 자료들이 대거 활용됐다. 끊임없이 자료화면으로 삽입되는 시사교양 PD들의 짤막한 인터뷰까지 말 그대로 지상파 방송국만이 모을 수 있었던 자료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재적소에 포함된 것이다.
지극히 로컬스러운 아카이빙 자료들은 글로벌 OTT는 갖기 어려운 콘텐츠 재료들로 진짜를 궁금해하는 콘텐츠 트렌드에 차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동시에 TV 방송국들에 슈퍼 IP란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가 아니라 자체 재료들을 영리하게 활용한 웰메이드 글로벌 다 큐멘터리나 프리미엄 시사교양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십수 년간 시청자의 웃음과 눈물, 감동을 책임져 온 TV 방송국들이 2023년에 그리고 2024년을 준비하며 그들의 창고를 털어 만든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납품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러나 기술의 진화에 따라 플랫폼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TV 방송국의 역할은 콘텐츠의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함이 옳다.
마지막은 리얼리티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다. 지금의 시청자는 오롯이 리얼 그대로를 원한다. 그 어떤 불가피한 상황이었더라도 누군가의 개입에 대해서는 원초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리얼리티임을 인지하고 시청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피지컬: 100〉의 글로벌 대성공 이후, 한 출연자가 제기한 결승전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고 결국 제작진은 원본을 모조리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연출자인 장호기 PD는 일반적인 예능과는 달리 시뮬레이션은 가능하나 리허설은 불가능한 리얼리티의 본질을 강조하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2024년 공개를 앞둔 〈피지컬: 100〉 시즌2도 가전제품의 사용 설명서만큼 빼곡한 매뉴얼을 철저히 설계했음을 알렸다.
무수한 경우의 수를 대비하기 위해 제작진이 수십,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해도 현장에서 예측할 수 없는 참가자들의 도전과 실패가 발생하는 것, 그것이 또 리얼리티를 보게 하는 힘일 것이다.
2019년 넷플릭스에서 신호탄을 올린 〈킹덤〉을 시작으로 코로나 19를 거치며 K-콘텐츠 르네상스가 열렸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지옥〉, 〈스위트홈〉, 〈수리남〉, 〈더 글로리〉 그리고 최근의 〈마스크걸〉과 디즈니+의 〈무빙〉까지 그 영광은 오롯이 K-드라마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인기 웹툰이 원작이거나 온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 즉 픽션이다. 물론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등은 특정 국가나 지역의 사회적 현상과 언어적 뉘앙스의 차이로 글로벌 전역에서 공감 받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앞서 〈피지컬: 100〉은 예능 자막을 최소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현상 그대로의 공감과 이해로 소통하려 했고, 결국에는 넷플릭스 시청이 가능한 190여 개국 중 82개국 이상에서 10위권에 진입하며 K-드라마 그 이상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현재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에서 〈피지컬: 100〉의 로컬 버전을 준비 중이다.
아무도 콘텐츠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에서
기술의 진화는 콘텐츠 시청 방식의 다양화를, 코로나19는 우리의 시청 시간을 늘리며 콘텐츠 생산 과잉을 유발했다. 그리고 앞서 설명됐듯이 2022년은 가장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만들어진 해로 기록될 것이다. 유튜브에서 매시간, 매분, 매초 쏟아지는 생산량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여기에 훗날, 21세기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책임진 두 공룡으로 기억될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모두에게 콘텐츠 취향을 학습시켰고 그들의 알고리즘은 지금도 날카롭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 아무도 콘텐츠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콘텐츠 상품은 설득과 진정성이 더해지지 않으면 팔리지도 집중받지도 못한다. 다양한 장르와 그 장르들의 융합으로 새로운 포맷이 등장하면서도 지금 리얼리티 콘텐츠가 주목받는 이유다.
바쁘다면 이거라도!
• 진짜 이야기와 생산적인 정보가 소구. 현실에 닿아 있는 스토리텔링이 대중을 움직이는 시대
• 쇼츠와 릴스가 넘쳐나고 건너뛰기와 배속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시청자가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리얼리티'
• 〈나는 솔로〉의 성공 요인은 각본이 없는 리얼리티, 성찰의 기회 제공, 일반인 출연자가 주는 진정성의 힘
• 〈피지컬: 100〉은 예능형 자막을 최소화하고 의도적인 편집을 없앴으며, 철저한 매뉴얼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진행
• 아무도 콘텐츠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 콘텐츠 상품은 설득과 진정성이 더해지지 않으면 팔리지도 집중 받지도 못함